드라마로 제작 됐으면 하는 한국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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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천왕
- 고구려14대왕 봉상왕은 숙신을 물리친 자신의 형제 달가와 돌고를 역적누명을 씌워 죽임
- 돌고의 아들 을불은 역적의 자식으로 몰려 궁을 나와 도망쳐다님
- 을불은 신분을 숨기고 살다 소금장수를 하면서 삶을 연명함
- 궁에서는 국상 창조리가 패악만 부리는 봉상왕을 더이상 섬길수없다며 왕을 폐할 마음을 먹음
- 창조리는 사람을 시켜 왕가혈통인 을불을 찾아다녔고 결국 찾은뒤 같이 일을 도모해 봉상왕을 몰아내고 왕이 됨
- 이후 낙랑군과 대방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업적을 세움
기구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왕실혈통임을 숨긴채 살다 왕이 된 인물

2. 하나회
-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한지 겨우 11일째 되던 날 오전 7시반, 권영해 국방부장관을 호출했음
- 김영삼은 권영해장관에게 이렇게 물었음
[군인들은 그만둘때 사표를 제출합니까?]
[군인들은 사표 내는 일 없이, 인사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각오는 언제든 되어있습니다.]
[그라모 됐구마는. 내가 육참총장하고 기무사령관을 오늘 바꿀라캅니다.]
- 이 대화를 마친뒤 김영삼은 곧장 육군의 핵심 보직인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을 경질했고 정확히 4시간 5분만에 후임을 결정함
- 하나회는 김영삼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채 이 사건 이후 그대로 조직이 초토화되는 숙청을 당하기 시작함
- 수도방위사와 특전사 사령관도 전격 해임됐고 이후 장성급 인사에서 하나회인사를 완전히 배제함
- 취임 49일만에 육군내 장성급인사에서 하나회인사를 모두 숙청했고 이후 영관, 위관급까지 싹다 뿌리뽑아버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긴박했고 대단한 결단이였다 생각하는 하나회 숙청

3. 박자청
- 박자청은 조선 개국공신 황희석 가문의 노비였음
- 이후 내시로 출사한 뒤 조선 건국 후 궁궐 낭장으로 일하고 있었음
- 어린 시절부터 목공이나 도면설계에 소질이 있던 박자청은 각종 건축물 보수공사와 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냄
- 우연히 이방원의 눈에 띄어 공조전서(국토부장관)로 임명됐고, 각종 건축물 공사를 도맡아 함
- 제릉/건원릉, 도성수축, 청계천조성, 창덕궁건설, 성균관 문묘 건설 등등
- 특히 박자청의 역작이라 불리는 위 사진의 경복궁 안에 있는 경회루는 연못과 3층건물을 짓는 대공사였음에도 8개월만에 완성해버림
- 실력을 인정받은 박자청은 이후 판한성부사(서울시장)까지 올라감
조선 초기 하인의 미천한 신분에서 종1품 고위관직까지 오른 대단한 인물

이사부
- 10대후반 가야 연맹국중 한 곳을 점령하는걸로 역사에 강렬하게 첫 등장함
- 20대초반 실직군주(삼척군)에 임명됐는데 여긴 당시 신라의 최전방, 이미 신라 내에선 그의 능력을 인정했음
- 우산국(울릉도) 정벌을 임명받고, 손쉽게 정벌해버림
- 이후 금관가야까지 정벌해버렸고, 병부령(국방부장관)에 임명됨
- 이후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싸움에서 이사부의 능력으로 엄청난 승전을 얻음
- 아마 이 시기 이사부는 신라의 수호신급으로 칭송받으며 국가적 영웅이였을거임
(신라의 승전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단양적성비 첫 머리에 이사부의 이름이 새겨져있을 정도)
- 그러나 이후 진흥왕이 한창 영토전쟁중일때부턴 이사부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음.
즉 너무 영향력이 커진 이사부를 견제하기 위해 아마 파직시키거나 했을거임
- 그리고 한참뒤 진흥왕은 이사부에게 대가야 정벌을 명하고 가야를 쑥대밭으로 만든뒤 가야는 역사속으로 사라짐
- 이후 이사부의 이름은 역사서에서 나오지않음. 아마 대가야를 점령했을때 이사부의 나이가 이미 고령이였으니
천수를 누리다 간게 아닐까 싶음
신라의 수호신이자 한반도 역사상 손꼽히는 정복 전쟁의 신인 이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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