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이 19세기 이후 몰락한 이유
작성자 정보
- 커뮤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3 조회
- 목록
본문

스키타이 이래 기병은 특유의 기동성과 충격력을 동시에 지닌다는점에서 전근대에 매우 강력한 전력이었음. 그래서 이런 강력한 기병들을 보유할수 있었던 유목민들이 단합할때는 인구 수십배가 되는 정주 제국들을 격파하기도 했고.
그러나 오늘날 들어서 사실상 주 전력으로 기병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음. 기병의 효력이 점차 떨어져간것의 시작점을 찾자면 총기등이 언급되곤 하나 사실 총기 이후에도 기병은 나름 유용하게 쓰였음. 나폴레옹 전쟁때 까지만해도.
하지만 19세기 이후 기병은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면 거의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건 세가지 이유로 1. 전투력, 2. 이동량 , 3. 물동량.
1. 전투력

기병이 전투병과에서 애용된 이유는 말 그대로 실제 전투에서 큰 성과를 가져다줬기 때문임. 너무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라고 들리겠지만 근대 이후에는 이 당연한게 당연하지 않게 되었음.
라인배틀기와 19세기 극초반까지만해도 고립된 보병들을 각개격파하거나 포위 내지 야전에서 최소한의 활약은 가능했으나 19세기 중반부터는 이게 안먹히기 시작함.
존 헐이 1820년대부터 미군을 위한 대규모 후미장전식 소총을 찍어내고 1840년대에는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이 드라이제 소총으로 무장하며 1860년대에 이르면 어지간한 열강들 군대는 후미장전식 소총으로 보편화.

게다가 대포 또한 후장식 대포로 개선되고 19세기 후반 즈음 가면 아예 맥심 기관총, 속사포, 고폭탄까지 나옴. 이런 상황에서 기병의 전술은 아예 폐기 되버림.
왜냐? 일단 기관총의 화망 형성이 되는 순간 기병의 최대장점인 기동력이 봉쇄되어버림. 분당 수백발의 총알이 쏟아지니 적군 시야 거의 모든곳이 사지화.
즉 다가가서 충격을 주거나 기습할려고 해도 그냥 다가가지도 못하며 진형도 짜는게 거의 불가능 해짐. 더해 고폭탄은 더욱 치명적이었는데 얘는 기병에 정확히 맞을 필요없이 그냥 근처에만 떨어져도 말도 혼비백산에 타고 있는 기병도 최소 부상 최대 사망.

[ 1897년식 75mm 야포 ]
범위형 공격이다보니 포위를 할려하는 순간 오히려 끔살당하기 더 쉬웠음. 심지어 흩어진다고 해도. 이전과 같은 스웜전술은 사실상 그 전부터 안먹히기 시작했지만 궁기병의 스웜전술의 핵심은 높은 기동성과 분산 전개임.
단순 창이나 활 또는 심지어 조총까지도 연사력이 느리기에 어느정도 빈틈이 존재하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1분에 수백발 쏘는 기관총에는 그런 파고들 빈틈이나 기동 행위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짐.
여기에 고폭탄까지 쏘아대면 평원을 달려 적을 공격하는 스웜 전술은 말 그대로 자살 행위가 되어버림. 지역 전체가 적군의 공격 대상이 되어버리니까.

[ 1850년 vs 1910년 유럽 철도 ]
또한 당시 일어나던 2차 산업혁명과 맞물린 생산력 폭발로 인해 무기와 탄약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보다 장기 소모전이 가능해진지라 소모전이든 단기전이든 어떤면에서도 기병이 설 자리가 없어짐.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넘쳐나는 생산력은 곧 산업의 쌀인 대규모 철강의 생산으로 이어졌고 이는 철도가 무지막지하게 깔리기 시작했다는것으로 기병의 우위는 더더욱 상실됨. 왜냐면 말은 철도랑 비교가 안되었거든.
2. 이동량

일시적 전투는 몰라도 전쟁은 특히 대규모일수록 장기로 흘러감. 즉 말의 주파속도가 일시적으로 기차와 비견되거나 더 빠르다 해도 큰 의미가 없다는거임.
전쟁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기 때문에. 장거리 전쟁 수행 능력에서 철도가 그야말로 월등했음. 최대 이유는 바로 철도는 말과 달리 생물이 아니라는 점.
말은 인간이 사육하는 동물로서 풀도 뜯어야 되고, 휴식도 취해야 하며, 잠도 자야 됨. 가장 성공한 유목제국인 몽골조차도 예외가 아니었음.

몽골이 러시아 원정을 할때 그 당시 기준 3~5마리의 말을 데리고 말을 계속 갈아타며 육포와 현지조달등으로 짐을 최소화해서 엄청 빠르게 주파하긴 했으나 파발마 같이 소식을 전하는게 아니라 대규모 기병대로 장거리 이동을 하면 속도가 느려질수 밖에 없음.
보통 그래서 몇주간 대규모로 움직일 경우 통상적으로 하루 40~60km 고 빠르면 80km. 물론 하루에 100~110km 이상을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건 몇주간의 장거리 원정은 아니었고 보통 몇일 단위였음.
그럼에도 매우 신속하게 움직인듯한 느낌인건 일단 소수 선발대를 보내고 그 이후 차례 차례 후속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지 수만 이상의 대규모 기병대가 동시에 신속기동을 한것과는 거리가 있었다는거고.

실제로 수부타이랑 제베의 진군 루트를 보면 바로 일직선으로 바로 간게 아니라 중앙아시아 -> 흑해 스텝 -> 루스 공국 진입 식으로 전진 보급기지를 다진후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며 몇년에 걸쳐 진군했고.
그도 그럴게 몽골 고원에서 유럽 러시아까지 거리는 거의 4,000 ~ 6,000km 인데 이걸 일점 돌파한다는것은 아무리 몽골마가 체력이 좋고 여러 마리의 말을 갈아타며 멈추지 않더라도 2달에서 4달은 걸리는 일정.
말도 그리고 기병도 지치기 때문에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니까. 특히 대규모 진군일수록. 물론 당시 보병의 3~4배는 빠르기에 전근대 기준으로는 미친 수준임. 그럼에도 일일 60~80 km 가 정말 몰아붙일때 진군때 가능했고 한 개체로서도 몇일간 무리를 하면 하루 200~300km.

그러나 철도는 19세기 후반에가면 하루가 아니라 '시간당' 100km 짜리도 나오고 하루에 800 ~ 1,000km를 가는 경우도 있었음. 파발마 형태가 아니라 대규모로 보냄에도.
그것도 단순 대규모가 아니라 수천에서 수만의 병력 + 대포 + 탄약을 여러차례 반복적으로 철도 깔린 어디에나 몇일내 도달하는게 가능했다는것으로 이것은 근본적인 물량의 차이로 이어짐.
3. 물동량

전쟁은 곧 보급임.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많이 찍어내서 얼마나 많이 이동하느냐가 속도 이상으로 중요함. 사실 전쟁 승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전장에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투입하느냐니까'
그리고 말은 이 부분에서 철도랑 경쟁이 도저히 안되었음. 전쟁에서 중요한건 1마리의 말이나 사람을 보내는 시간이 아닌 속도 x 규모 x 횟수 거든.
기병의 경우 고작 몇명만이 3일간 600~800km 주파한후 말들이 지쳐 목을 축이고 건초를 먹는등 회복 시간을 가져야함. 그러나 철도는 3일동안 900 ~ 2,400km 거리에 수천명의 병력과 탄약을 보낼수 있지. 물, 음식, 휴식 필요없이.

일회성과 단기적 군사작전 vs 아예 본대급이 지속적으로 운송되는것은 명백한 차이가 있지. 얼마나 1마리의 말이 순간 빠른 속도를 내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보내느냐가 관건이란거고.
단적인 예로 위에서 말한 러시아 원정의 경우 이리 저리 6만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몽골 본토에서 출발해 기동, 집합, 이동까지 본격 침공까지는 몇년이 걸렸고 심지어 서쪽 전진기지에서 시작하는데도 몇주에서 몇달.
반대로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은 철도를 통해 단 19일만에 무려 38만명이 바로 지정 지역에 모이는데 성공함.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몽골-러시아보다 먼 9,700 km 거리 만주지역에 기차가 도착하는데 18~20일 컷이였음. 비록 필요한 인원인 100만을 모으는데는 몇달 단위 걸렸으나.

여기에 전보까지 더해져 명령이 중앙에서 그 즉시 하달될수 있으니 신속하고 체계적인 군사 임무 수행이 가능해짐. 대규모 병력과 물자 운송이 동시에 신속하게 가능한 철도와 함께. 다시 말해 어느 전장에서 싸울지를 정하는게 가능해졌다는것.
안 그래도 지속 + 물량 + 보급은 일시적인 속도를 이기는데 여기에 장기적으로 속도마저 더 빠르다? 기병이 가진 사실상 모든 강점을 잃거나 상대방이 그 강점에서 더 뛰어나게 되버린것으로 병종으로서 실용성이 거의 사라짐.
이렇게 전투력, 기동성, 보급성 모두 열세에 처한 결과 한 때 세계를 누비고 최강의 병종중 하나로 군림했던 기병은 특수 지형에서 보조로 쓰이는 용도 정도로 전락하게 되었음.
기병이 19세기 이후 몰락한 이유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