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사령관들의 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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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대장 겸 8군 사령관
우키타 히데이에 (57만석)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빨
다이묘 영지(석고)빨로
21살의 나이에 바지 총대장에 임명됨

1군 사령관
고니시 유키나가 (24만석)
현재 일본의 구마모토 남부의 다이묘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키웠던 심복 중의 하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고 함

2군 사령관
가토 기요마사 (25만석)
현재 일본의 구마모토 북쪽의 다이묘
영화나 드라마에서 항상
고니시와 사이가 나쁜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영지가 붙어있어서
자잘한 다툼이 많았기 때문
또한 히데요시의 근위 무사 7인으로 구성된 시즈가타케 칠본창 중의 한 명으로 히데요시는 이 무사들을 키우기 위해 석고도 주고 사령관 자리도 주었음

3군 사령관
구로다 나가마사 (12만석)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 중에서도
핵심 가문으로 도요토미 정권의
창업 공신 가문이었기 때문에
나이는 어렸지만
고니시나 가토보다 높은 대우를 받음

4군 사령관
모리 카쓰노부 (6만석)
서부의 실세가문인
모리가문과는 관련 없는 인물로
히데요시가 그냥 모리성을 쓰라고 해서 쓰게 됨

5군 사령관
후쿠시마 마사노리 (11만석)
지금의 시코쿠 섬의 작은 다이묘로
시즈가타케 칠본창 중의 한 명

6군 사령관
고바야카와 다카가케 (37만석)
현재의 후쿠오카 지역의 다이묘

7군 사령관
모리 데루모토 (112만석)
일본 서부의 실세 가문이었지만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을 원칙으로 여겨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이 되었고
임진왜란에서도 가장 많은 군대를 파견
여담)

수군
와키자카 야스하루 (3만석)
시코쿠 섬 오른 쪽에 있는 작은 섬인
아와지 섬의 다이묘로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본 수군의 총사령관급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는 어디 명함도 못 내미는
석고 3만석의 작은 다이묘였음
또한 시즈가타케 칠본창 중의 한 명이었지만
석고가 낮았기 때문에
나머지 칠본창들에게 무시를 많이 받음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사령관들의 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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